[책]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 릭 조이너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릭조이너, 2002.
[책을 읽고]
두려움. 이것은 나의 27년의 삶을 이끌어온 핵심동기였다. 난 두려웠다. 혼날 것이 두렵고, 거절당할 것이 두렵고, 잃을 것이 두려웠다. 고생할 것이 두려웠다. 뭐가 그리 두려운지... 두려움에 의해 움직이고 쾌락에 의해 움직였다. 그런데 무절제한 쾌락추구는 또한 두려움을 낳았다.
이 책은 두려움이 내 안에 많은 것 같다는 말에 조장이신 집사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읽게 되었다. 매우 얇아서 1~2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소책자이다. 나에게 좋은 충격을 안겨준 추천할만한 책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을 무엇이 이끄는가에 대해 “믿음”과 “두려움”의 대칭구도를 그려서 설명하고 있다. 마귀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만든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신다. 우리가 두려움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 원하신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해 평강과 기쁨으로 걸아가는 사람들이 되기 원하신다.
우리는 두려울때 기쁨을 잃고, 행복을 잃고, 자신감을 잃고, 의욕을 잃고, 모든 좋은 것을 잃게 된다. 그러나 평화롭고 기쁜 상태에서는 우리는 사랑이 풍성해지고 온유해지며 우리의 잠재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다.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않겠다. 믿음으로 움직이겠다. 그러려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의지, 헌신, 순종이 필요하다. 평강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한다. 내 안에 평강이 사라지려하는 것을 감지하면, 마귀가 두려움을 심는 순간, 싸워야 겠다. 어둠의 생각을 물리치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와 믿음과 순종과 헌신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워야겠다.
책을 읽으며 또한 내가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 죽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많았음을 발견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모든 것을 버리기로 다짐하였다.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좋은 책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믿음으로 살게 도와주세요. 제가 믿음이 너무 없었습니다. 하나님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제맘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저를 받아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 마음을 새롭게 하옵소서.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로 제 마음을 채워주소서.. 두려움의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의 이름으로 두려움을 심는 마귀는 떠나갈 지어다.
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두려운 것은 다만 아는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고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나 제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평강은 믿음의 결과로 온다고 합니다. 평강이 사라질때 나의 믿음을 검해보아야겠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평강 가운데 걸어가며, 마귀의 진을 깨부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주님의 강한 군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되었음을 믿고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요 내용]
제1장 사람의 혼을 위한 싸움
마치 주님께서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데 믿음을 사용하시는 것처럼,
마귀는 자신의 능력 아래 이 세상을 잡아두기 위해 두려움을 사용합니다.
모든 사람의 혼 안에서 맹렬하게 날뛰는 믿음과 두려움 사이의 전쟁이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허용한 정도만큼 악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만일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그 두려움이 우리의 주인이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성장해 가는 것과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여 통제하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기본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faith)이 우리의 행동과 신념(belief)을 지배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이 우리의 행동과 신념을 지배하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믿음 vs 두려움 !!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단 하나이지만 두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유케 하는 믿음의 행보는 단순하지만, 두려움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 가장 큰 두려움 가운데 하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범주 가운데, 다양한 종류의 두려움들이 발견되어지는데, 거절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당황이나 굴욕에 대한 두려움 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에서 가지게 되는 평강, 안식, 그리고 성취가 더 커지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실패들, 거절들, 그리고 심지어는 굴육 당하는 것들조차도 실제로 우리를 지배하는 그러한 영역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의 결과라는 사실은 역시 주목해 볼만 합니다.
두려움은 만일 우리가 그 영역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지 않게 될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하도록 합니다.
원수가 두려움과 테러를 사용하여 대외정책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전세계에 공격을 감행하려고 할 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원수가 공격하는 어떤 장소에서든, 믿음이 풀어지는 가장 위대한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땅에 있는 정부들은 보통 무기의 수준에서 테러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직 교회만이 이 원수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되고 지속적인 승리를 얻으려고 한다면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하는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마귀는 3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개인, 지역, 지구 - 우리는 이 모든 수준의 악과 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오직 왕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정도만큼 또는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정도만큼만 우리는 진정한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증가한 믿음에 의해 증명되어진 권위 안에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더 높은 수준들의 전쟁을 치르도록 부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온 세상을 공격하고 있는 “세상 지배자”와 맞서 나아가는 믿음과 권위의 자리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악을 갚기 위해서 이 시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을 사랑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속박 가운데 가두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승리는 우리의 원수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권위를 부여받게 되고, 더 높은 위임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부르심을 받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계속해서 그들의 위임을 받습니다.
높은 지위로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약속을 소유하기 위해 계속되는 성숙과 충실함이 우리 안에 진정한 권위를 풀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영적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이 세상에 보내어진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보내어 졌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신적으로 강력한 무기들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원수의 요새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허리띠에 있는 모든 구멍을 무기로 채워야 합니다. 즉 우리는 모든 무기들을 사용하여 원수의 요새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악이 지배권을 행사하도록 방관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 11:31~32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1장요약]
원수들이 우리의 삶, 우리의 가정, 우리의 학교,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침입하는 주된 경로는 두려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원수가 자기의 지배력을 높이려고 전 세계에 걸쳐서 증가시키려고 하는 두려움에 맞서서 일어나야 합니다.
두려움이 우리의 삶의 과정이나 우리의 현재 행동들을 유발시키지 못하도록 우리는 지금 즉시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과의 전쟁중에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두려움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주님은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으며 그리고 우리를 창조하셔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입혀주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로부터 나오는 결과입니다.
세상 끝에는 추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영혼의 추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대의 끝에, 최종적인 속박의 멍에인 두려움이 완전히 무르익게 되는 것과 동시에 주님의 백성들은 가장 위대한 수준의 믿음과 평강을 경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상에서 풀어졌던 적이 없는 가장 엄청난 두려움과 가장 위대한 믿음을 막 경험하려는 참입니다. 이 둘은 동시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제2장 좋은 두려움, 나쁜 두려움
우리는 물질을 끌려다니지 않고 물질을 지배해야 한다.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돈을 지배하라.
육체에 끌려다지지 말고 육체를 지배하라.
욕망에 끌려다니지 말고 욕망을 지배하라.
세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세상을 지배하라.
믿음과 순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순종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살려면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우리의 신뢰를 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돈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하나님의 위치에는 돈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뜻을 행할 만큼의 충분함을 원할 뿐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의지하고 복종할 때, 우리는 돈이나 다른 형태의 물질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강하게 그것을 열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자유는 믿음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속박은 두려움을 통해서 옵니다.
우리가 돈으로부터, 다른것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됨으로 오는 자유 안에서 걸어야 합니다.
재정적인 상태가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재정적인 고려에 근거한 결정을 하지 마십시오.
회개+순종=자유
재정적 독립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것은 그분이 주신 교훈들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바로 사람들이 자기의 신뢰를 두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 가장 큰 우상은 돈입니다.
주님보다 자신의 직장과 통장에 더 많은 신뢰를 두고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활동을 어렵게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짐승의 표는 받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종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인을 위하여 삽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철저한 순종의 생활방식을 통한 헌신으로만 가능합니다.
종은 자신의 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자발적으로 종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헌신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십자가를 껴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로 진실한 하나님의 '종'인 자들이 주님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셨지만 종이 될 것을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종이 될 것인지 말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생존에 대한 열쇠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주인들은 자기의 종들을 위해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의 종, 노예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자유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연합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하여 죽게 됩니다.
죽은 자는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유나 지위를 두려워하는 정도는,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죽지 않은 정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믿음을 사용하시듯이,
마귀는 우리를 옭아매기 위하여 두려움을 사용합니다.
사실상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허걱...)
평강, 그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원수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평강을 빼앗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평강을 잃어버리게 되면 사랑, 온유, 기쁨 절제 등을 자연스럽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허걱!!!) 성령의 열매는 언제나 그 분 안에서 평강을 누릴 때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자입니다. Prince of Peace
예루살렘의 의미는 평강의 도시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열어 땅의 모든 권세, 능력 그리고 통치보다도 지극히 더 높은 곳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보기 시작하고
그분의 진리 안에서 걷고
이것이 가져다주는 심오한 평강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함에 따라
그것은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사단의 영향력을 깨뜨립니다.
우리가 자신을 겸손케 하는 방법들 중 하나는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걱정이란 것은 일종의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해결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것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실제로 믿는다면, 우리는 분투하는 것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모든 것을 하나님 없이 스스로 하려는 것으로부터 말미암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이 벗어날수록, 더 많은 애씀과 혼란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일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위와 다스리심에 대한 지식 안에서 성장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성장해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 안에서 걸어가면 자연히 사단의 영향력을 파괴하게 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참된 평강은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평강이 부족합니다.
우리 삶에서 근본적인 부르심은 단순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날마다 단순히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곧 권능입니다.
우리는 평강의 대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평강은 평화로운 상태로부터 말미암는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평강은 우리의 믿음의 수준에 대한 바로미터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때,
평강은 바로 그 결과로서 오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앎으로써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참된 기쁨이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위해 창조되었고,
오직 그분과의 친밀함만이 언제나 우리 혼의 가장 깊은 갈망은 만족시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실제 우리를 위한 최선의 삶입니다!
우리를 위한 최선의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것,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 왕을 따르고, 모든 것에서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이며, 그리고 그것은 흔들릴 수 없는 평강과 영원한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평강으로 무장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복하러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언제나 당신의 평강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언제나 승리할 것입니다.
거룩이란 단순히 죄를 짓지 않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단지 죄를 짓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일들을 위해 사랑하게 될 것이며,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Look at HIm!! Have Faith in Him!!!!
하나님께는 걱정이 없습니다.
성경을 살펴보십시오. 말씀으로 시험이 올때 싸우십시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야할 때입니다.
당신이 평강 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장소는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는 믿음과 평강 가운데서 성장해가고 있어야 하고,
두려움과 근심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통치의 증가는 또한 평강의 증가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